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문단 편집) ==== 중국으로 떠나는 키신저 ==== 7월 8일, 키신저는 칸 대통령과 한시간 반 동안 회담을 가지고 공식 만찬에 참여하기로 하였으나 사실 칸 대통령과 짜고 만찬을 취소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키신저는 거짓으로 복통을 호소하며 요양을 핑계로 칸 대통령의 산장인 나티아 갈리 별장으로 떠났고 칸 대통령은 만찬석상에 모인 사람들에게 키신저 박사가 여독과 복통이 겹쳐 자신의 산장에서 쉬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7월 9일, 파키스탄 정부는 공식적으로 키신저가 병환으로 인해 휴식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칸 대통령은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국방장관 등 요인들을 키신저를 문병하게 한다는 구실로 별장에 파견했지만 칸 대통령의 연락을 받은 모하마드 칸 외무장관이 이들을 제지하여 키신저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 사이에 별장에 파견된 의사는 키신저로 위장한 경호원을 치료하는 등 파키스탄 정부는 대단히 협조적이었다. 키신저의 가짜 복통 소동이 워낙 보안에 잘 부쳐져서 놀란 키신저의 비밀요원들이 산장에 경호원을 파견하여 키신저의 상태를 살피려다가 적발되었고 키신저는 보안을 위해 문제의 경호원을 산장에 연금시키라고 지시했다. 그 사이 키신저는 7월 8일 오후 11시, 파키스탄 영빈관에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긴장감으로 인해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7월 9일 새벽 3시가 되자 키신저는 영빈관에서 아침을 먹은 후 4시에 모하마드 칸 외무장관을 따라 파키스탄 군용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키신저는 파키스탄 국제항공(PIA) 소속 보잉 707제트기로 이동했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4명의 중국 관리가 키신저를 영접했다. 키신저는 개인 비서 윈스턴 로드, 아시아 문제 전문가 존 홀드리지, 보좌관 리처드 스마이저만 대동하고 있었다. 키신저를 태운 특별기는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한편 키신저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써서 위장한 상태였고 키신저가 탑승한 특별기도 수시로 베이징을 오가는 비행기라 이목을 끌지 않았으나 때마침 근처에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 베그가 불침번을 서다가 키신저를 목격했다. 베그는 파키스탄 관리를 붙잡고 방금 탑승한 사람이 키신저가 아닌지 물었는데 키신저가 베이징으로 가는 것이 기밀인줄 몰랐던 관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베그는 이어 키신저의 행선지를 물었으나 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그는 키신저가 베이징으로 간다고 유추하고 즉각 기사를 작성하여 본국에 송고했으나 데일리 텔레그래프 본사는 황당한 기사로 치부하고 베그에게 이따위 술에 취해 쓴 기사를 보내지 말라고 면박을 주어(...) 희대의 특종기사는 이렇게 사장되었다. 중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키신저는 스마이저 보좌관과 함께 뒷좌석에서 의견교환 및 중국에 관한 브리핑 자료를 읽었다. 비행기는 K2상공을 지나 오후 12시 15분에 베이징 근교 남원 군사공항에 착륙했다. 키신저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예젠잉]]과 훗날 초대 유엔 수석대표와 외교부장을 지내는 외교관 [[황화(1913)|황화]]의 영접을 받았다. 이들과 악수를 교환한 후 몇마디 말을 한 키신저는 중국 차량 <홍기>를 타고 영빈관으로 안내되어 식사를 했다. 식사가 대단히 맛있었기 때문에 키신저는 아무래도 중국을 방문하다가 굶어죽은 귀빈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농담을 했다.[* 키신저는 중국에서 대접한 음식이 워낙 마음에 들었는지 귀국할때 몸무게가 5파운드나 증가한 상태였다.] 조어대 6호관에 숙소를 배정받은 키신저는 샤워를 한 후 저우언라이와의 회담을 준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